명량대첩은 정유재란 때인 1957년에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일본군 수군을 대파한 해전입니다. 명량은 전라남도 진도와 육지사이의 해협입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원균이 거느리고 있던 조선 수군은 대부분 패배하고 마는데 이에 7월22일 유성룡의 간곡한 건의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이순신 장군이 임명됩니다. 이순신은 휘하의 군사들을 재정비하였는데 당시 쓸만한 전선은 칠천량 해전에서 배설량 장군이 탈출시켰던 12척에 불과합니다.

 

이때 일본군은 한산섬을 지나서 남해안 일대를 침범하고 육상의 진출과 동시에 서해로 진출하려고 하던대였습니다. 이순신은 서해 진출의 물목이 되는 명량을 지키기 위해서 이진과 어란포를 등지로 거쳐 8월 29일 벽파진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일본군은 벽파진에 있는 조선 수군에 수차례 야간 기습작전을 전개하였는데 우리 측의 철저한 경계에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적의 정세를 탐지한 이순신은 명량을 등지고 싸우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9월15일 조선 수군을 우수영으로 옮기고 다음날 일본 수군이 명량으로 진입하자 출전령을 내리고 선두에 서서 명량으로 향하였습니다.  이때 일본수군의 전선은 130여척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조선수군의 맹렬한 전투 공격에 일본수군 31척이 파괴되자 일본 수군은 도주하였습니다.

 

명량대첩에서 이순신장군은 조선 수군의 열배 이상에 해당하는 적을 협수로의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여 서해 진출을 차단하고 정유재란의 대세를 조선군에게 유리하게 전개할수 있게 하였습니다.

 

Tag